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의 성장 방향성
Why Decentralization Matters
김민현 (kimminhyun@ainetwork.ai)
블록체인과 탈중앙화(Decentralization)가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수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록체인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과, 두 번째는 이것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 사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는 적으나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는 건가요?” 라는 대중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하고, 두 번째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 속에서 핵심 가치가 흐려지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의 활용처 중에 정부 검열에 저항한다거나, 자유로운 정치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등의 관점들은, 탈중앙화라는 기능적인 관점을 분권화라는 행정적 관점으로 연결 시킨 것으로 전체적인 맥락 없이 보게 될 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블록체인은 요리에 있어서 ‘소금'의 발견 같은 존재인데, ‘소금'이 요리에 가지는 의의를 ‘소금’의 특성에만 급급하여, “앞으로 짠 음식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거나 “짠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부나 대기업에서 주도하는 블록체인 관련 사업들 중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을 종종 찾아볼 수가 있고, 스타트업에서도 별다른 고민 없이 블록체인의 특정 성질만에 기반하여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렇게 선정된 아이템들은 공통적으로 “블록체인 없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특정 기술적 사실이 충분한 고민없이 사회적 상상으로 연결되어 버리는 논리적 비약을 보충하고자, 탈중앙화 네트워크 상의 기능적 장점, 특징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고자 한다. 인터넷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경험적으로 기술하다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하게 다음 세대의 네트워크 형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탈중앙화 네트워크라는 말 대신에, 개방형 프로토콜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 했듯이 탈중앙화라는 단어가, 순수하게 네트워크 운영 주체가 하나 인가, 여러 개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방식인가 민주적인 방식인가의 여부로 자주 활용되어 오해를 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방형 프로토콜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더 빠른가, 더 효율적인가, 더 예측가능한가, 더 지속가능한가 등을 주제로 설명하고 싶다.
인터넷의 첫 시대
1980 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첫 시대에 인터넷 서비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한 개방형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초기에는 연구 단체 위주로 연결 되었던 인터넷 망이 대중들의 일상 생활로 들어오면서 인터넷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였고, 이 개방형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설계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 Yahoo, Google, Amazon, Facebook, LinkedIn 및 YouTube와 같은 거대 플랫폼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AOL과 같은 중앙 집중식 플랫폼의 점유율은 크게 줄었다.
인터넷의 두 번째 시대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중앙화된 영리 기업들은 개방형 프로토콜의 발전 속도를 상회하는 속도로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한다. 대표 주자로 Google, Apple, Facebook 및 Amazon (GAFA)은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 나갔다. 모바일 앱의 등장과 스마트 폰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이제 사용자는 개방형 서비스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GAFA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에 의해 중재되는 개인화된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술들을 빠른 속도로, 또 대부분 무료로 선보이며, 인터넷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신생 기업, 제작자 및 기타 그룹의 활동 범위가 제약됨으로써 인터넷의 역동성을 감소 시켰다. 이제는 좋던 싫던, 그들이 주도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컨텐츠를 올려야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하여야 한다. 랭킹 알고리즘의 공정함의 여부를 떠나서, 스타트업이나 창장자들이 중앙화된 플랫폼이 제공하는 랭킹 알고리즘에 특화된 아이템에 집중하는 모습들은 혁신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웹 3": 인터넷의 세 번째 시대
중앙 집중화에 대한 한 가지 대응책으로 정부 규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터넷을 전화, 라디오 및 TV 네트워크와 같은 통신 네트워크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로, 과거의 하드웨어 기반 네트워크와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드웨어 기반 네트워크는 한번 구축되면 재구성이 매우 힘든 반면, 인터넷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는 기업가 혁신과 시장력을 통해 네트워크를 재구성 할 수 있다. 블록체인 산업에서 규제의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묻는 다면, “기업가 혁신과 시장력을 통해 재구성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라는 관점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인터넷은 최첨단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로, 수십억 개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를 연결하는 간결한 코어 레이어로 구성된다.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인간의 사고를 인코딩하는 것이므로 거의 무한한 디자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선택, 실행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인터넷에 보편화된 프로토콜은 문서와 데이터 전달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때, 다음 인터넷 시대의 핵심 서비스는 향후 수십 년 동안 거의 대부분 완전히 재구성 될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중앙화된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인터넷에서 많은 것들이 가능해 졌지만, 인터넷 프로토콜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있다. 사람들이 인터넷과 거의 동일시할 정도로 현재 세상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월드와이드웹(WWW)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통일된 웹 자원의 위치 지정 방법. 예를 들면 URL(Uniform Resource Locator).
두 번째, 웹의 자원 이름에 접근하는 프로토콜(protocol). 예를 들면 HTTP.
세 번째, 자원들 사이를 쉽게 항해할 수 있는 언어. 예를 들면 HTML.
세계 최초의 월드 와이드 웹 사이트에 방문해 보면, 이 프로토콜의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문서, 연결, 전송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원리로 세계의 정보들을 연결한 것이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인터넷 하면 떠오르는 거대한 정보망(Web)이다. 이 프로토콜은 매우 간결해서 확장성이 뛰어나지만, 한가지 한계적 특성이 있는데 바로 기억하지 못한다는(Stateless) 것이다. 위 사이트를 접속하면 매번 같은 페이지가 보이게 된다. 월드와이드 웹은 내 잔고를 기억할 수가 없고, 내 잔고를 차감할 수 없으므로 송금을 할 수 없다. 여기에 블록체인이 인터넷이 더하는 가치는, 기억(Memory)과, 연산(Computation)이다. 즉, 비트코인은 내 잔고를 기억하고, 내 잔고에서 차감한 금액만큼 상대방 잔고에 덧셈을 해 주는 것이 개방형 프로토콜에서 가능함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로서 의의를 가진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설계
블록체인이 인터넷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를 파악한 후, 새로운 기술 흐름에 맞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식으로 운영하여야 할까? 개방형 프로토콜 기반 서비스들이 압도적인 성장 동력으로 과거에 중앙화된 서비스들을 대체 하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지만, 성패가 어디에 달려있는지는 하나로 귀결된다: “누가 더 강력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
그러면 누가 제품을 만드는가? 소프트웨어 및 웹 서비스는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팅, 세일즈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가 구축한다. 즉, 블록체인과 같은 개방형 프로토콜은 기업가와 개발자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첫 번째 시대와 같은 이유로 인터넷의 세 번째 시대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기업가와 개발자의 마음을 얻는 메세지와 협업 방식은 어떤 것일까? 2000년대 위키 백과와 Encarta의 경쟁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00년대 초에 두 제품을 비교해 본다면 Encarta는 백과사전의 권위나, 내용, 주제 범위와 정확도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우수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Wikipedia는 탈 중앙화된 지역 사회가 운영하는 철학에 매료된 적극적인 자원 봉사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훨씬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다. 그 결과 2005년에 위키 백과는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있는 백과사전이 되었고, Encarta는 2009 년에 문을 닫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중앙 집중식 시스템과 분산형 시스템을 비교할 때 정적 시스템에 기반한 제품 완성도가 아니라, 동적으로 발전하는 프로세스를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중앙 집중식 시스템은 종종 완전한 지지에서 아주 구체적인 계획으로 시작하지만 후원 회사의 직원이 만들어가는 예측 가능한 속도로만 향상되는 한계를 가진다. 탈중앙화 시스템은 불완전한 지지에서 변화할 수 있는 계획으로 시작하지만 특정 조건들이 맞으면 새로운 기여자가 확산되면서 기하 급수적으로 성장한다.
블록체인의 경우 핵심 프로토콜 개발자, 보안 암호화 네트워크 개발자, 타사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 및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서비스 제공 업체와 관련된 여러 개의 복합적인 피드백 루프가 존재한다. 이러한 피드백 루프 속에 녹아들어가,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개방형 프로토콜 기반한 스타트업의 첫번째 과제라고 하겠다.
두번째로는, 제품 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앞서 예시로 든 첫 번째 월드 와이드 웹 사이트를 사용자에게 보여주면, 사용자들이 이것을 보고 지금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그래서 사용자 몇 명이에요?” 라는 질문에 취약한 이유이다.
"1989 년 사람들에게 삶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면 하이퍼 텍스트를 사용하여 연결된 분산 된 정보 노드 네트워크를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Farmer & Farmer
우리는 중앙 집중식 플랫폼에서 소프트웨어를 배포 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종종 완벽하게 설계된 사용자 경험을 가진 앱만이 유일한 성공 방정식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중앙집중식 플랫폼은 킬러 앱들과 번들로 제공되곤 하는데, Facebook에는 핵심적인 소셜 기능이 있으며 iPhone에는 여러 가지 주요 앱이 있다.
반면에 분산형 플랫폼은 종종 사용자가 불특정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참여를 통해 발전하기 때문에 완성된 모습을 완전히 예상하기도 힘들다. 그 결과, 2가지 단계의 제품 시장 적합성을 거쳐야 한다.
플랫폼과 플랫폼을 완성하고 생태계를 구축 할 개발자 / 기업가 간의 제품 시장 적합성
플랫폼 / 생태계 및 최종 사용자 간의 제품과 시장 적합성
이 2 단계 프로세스는 생각보다 설계하기가 까다롭지만, 한 번 설계되고 나면 굉장히 큰 잠재력을 가진다.
세번째 과제는, 변화하지 않는 게임의 규칙을 정립하거나, 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것이다. Twitter 스팸 문제와 이메일 스팸 문제를 비교해 보면, 예측 가능한 게임의 룰이 얼마나 크게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 수 있다. 트위터가 타사 개발자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폐쇄 한 이후 트위터 스팸을 처리하는 유일한 회사는 트위터 자체 뿐이다. 대조적으로, 이메일 스팸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백억 달러의 벤처 캐피탈과 기업 자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수백 개의 회사가 있다. 이메일 스팸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이 회사들은 이메일 프로토콜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게임 규칙이 바뀌지 않아도 되는 걱정없이 비즈니스를 구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블록체인이 가지는 인터넷에서의 함의와 기반 스타트업 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세가지 사항들을 정리해 보았다. 새로운 기술이 도래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토론과 상상을 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특권이자, 즐거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주제에 대해 마음 맞는 멋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개방형 프로토콜에 맞는 조직 구조, 제품 설계, 참여 구조, 협력 구조들이 있을 때, 블록체인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개방형 프로토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들이 새롭고 좀 더 다면화된 구조의 창의적인 사업들을 많이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글은, 2019년 12월 17일에 있었던 블라블록 데모데이 (https://www.onoffmix.com/event/203112) 기조연설 내용으로, Andreessen Horowitz VC 파트너 cdixon의 Why Decentralization Matters (https://cdixon.org/2018/02/18/why-decentralization-matters/)의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 발표자료: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mv5y1kag1dF580CTQ-ef2x3WAB76gFwKx3qacqbUV8E/edit?usp=sharing
